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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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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새김질/영화 2009. 2. 27. 10:0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스포일러 따윈 난 몰라)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늙어가는 제 신세를 한탄하기에,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르던데, 우리 시간은 어째 무조건 직진이네. 라고 대답했다가.
그 영화 재미있다던데, 로 넘어가서 급히 만날 약속을 잡아 보게 되었다.


개봉한지 2주가 넘어가는 영화라 보는 사람이 없을거라 예상하고 예매도 안한채 갔었는데,
전자사전 수리 할 일이 있어서 미리 표를 끊어놓지 않았으면 영화 보기 애매해 질 뻔 했다.
어디 구석자리에 앉아서 보지 않았을까. 그정도로 사람들이 복작복작했다.
나중에 보니 아직 예매순위 2~3위를 지키고 있는 아직 쌩쌩한 영화였다.

죽어가고 있는 쌕쌕거리는 왠 할머니와, 그 할머니의 딸이 등장하고,
허리케인은 불어닥치고. 사람들은 대피하고. 할머니는 옛 연인의 다이어리를 읽어달라고 딸에게 보챈다.
그 다이어리가 벤자민 버튼의 마지막 글이었다.

버튼스 버튼을 경영하는 버튼회사 사장 버튼씨의 아들로 태어난 벤자민은,
특유의 노안으로 인해 "괴물" 소리를 들어가며, 16달러인지 18달러인지의 돈과 함께,
'퀵시'로 기억되는 (여전히 등장인물 이름을 못 외운다.) 흑인 여성집에 버려진다.

사실상 이정도는 되어야 괴물 소리 들을만 하지 않을까.애기가 저렇게 나왔으면 총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만,
처음 태어나자마자의 신생아는 누구를 막론하고, (소녀시대 멤버들도 처음 태어났을 땐 쭈글쭈글 했을텐데.)
쭈글쭈글 주름투성이임이 분명한데, 그 쭈글쭈글한 모습을 보고 괴물이라고 가져다 버린 비정한 아버지란..

그렇게 양로원 내지는 실버타운 같은 그 집에서 늙은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걸음마도 배우고. (뒤에 사이비 목사는 왜 갑자기 쓰러지는 걸까)
생명이 넘치는 곳엔 죽음이 함께 한다?

병정 놀이도 하고.
못하던 술도 마시고, 아가씨도 품어보고. 배도 타보고..

어느순간 잘생겨져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젊어지는 얼굴이란. 워훙!

그 전의 얼굴은 짐캐리가 분장을 한 듯한 얼굴이었는데, (레모니스니캣의 위험한 대결에서의)

(아, 스크린샷을 가져다 놓고 보니까 좀 다르다. 그저 대머리가 까졌을 뿐..)

어느순간 왠 핸썸한 아저씨가 등장한다. 머리숱도 많고 키도 크다. 아, 어쨌든 멋있다고.
예술가의 배를 타고(그래서 예(술)인(의)선(=배)인가?)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경험을 한다.
사랑도 하고, 전쟁에도 참여하고. (난데없이 발칸을 쏴대는 모습에 아연실색했다.)
그리고 돌아온 옛 집엔 조금 늙은 엄마와 맨날천날 벼락 맞고 다니는 할아버지 등 몇몇 사람을 빼곤 모두 교체 되어있다.
벼락을 7번 맞은, "한번은~"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영화에 몰입하는데 일조했다.

영화에선 끊임없이 누군가가 죽어가고, 새로이 실버타운에 입성한다.
세월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도 하고, 사람이라면 모두가 언젠가는 죽는다는걸 보여주는 듯도 하다.

액면가가 70~80살쯤 되던 어릴적 만났던 파란눈의 갈색머리를 가진 여자 아이가
파릇파릇 피어나는 스물 몇살의 처녀가 되어있었지만, 수다스러운게 마뜩찮았는지 또 헤어지더라.
 - 도무지 말할 틈을 안줘!
뭐, 이 처녀가 현재시점의 허리케인 속에서 죽어가고 있는 할머니다.

또, 뭐 이런 저런 삶을 살다가 중년의 얼굴을 가진 중년이 되었을 때, 드디어 어울리기 시작할 때,
마찬가지로 중년이 되어있는 파란눈의 아줌마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딸을 하나 낳고 보니, 지금 다이어리를 읽고 있다.
"생부를 이런식으로 알려주삼?" 이라는 딸, 병원 건물 내에서 담배를 피워주는 대담함을 보여주시더라.
 - 멋있다! 이시대의 반항아다!

아, 그 전에 벤자민 버튼의 생부가 벤자민을 찾아와 버튼스버튼 버튼공장등 버튼 일가 재산을 모두 물려줬다.
그 돈으로 벤자민 버튼과 그의 파란눈의 아줌마 (데이지라는 이름이 계속 떠오르긴 하는데..)는 요트타고 놀러다녔다.
짱이다. 완전 놀고 먹는 생활, 늙은 어린시절에 2달러 봉급의 배 탈 때 빼고는 도무지 일하는 걸 못봤다.

이제 영화가 2시간쯤 흘렀을 테다. 슬슬 졸리기 시작하고, 나가는 사람도 몇 있었다.
영화 리뷰를 보며 초반엔 질리고 후반엔 재밌다기에, 신경을 썼음에도 졸리더라. 결국 몇장면 놓치고 말았다.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벤자민과 파란눈의 노년 아줌마는 헤어졌고, 벤자민은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청년이다.
딸래미 캐롤라인은 중고딩쯤 되어 보이고, 왠 외간 남자와 결혼을 한 듯 같이 살고 있다.
자신은 강하지 않다며, 애들 둘은 절대로 못 키웠을 거라는 파란눈의 아줌마의 말로 미루어 보아,
어려지는 벤자민이 아빠 노릇을 못할 것 같아 미리 헤어진 듯.

벤자민은 점점 어려져서, 키도 작아지고, 여드름도 나고, 꼬맹이가 되어 가는데.
파란눈의 아줌마는 점점 늙어져서, 주름도 패이고, 기품도 나고, 노인이 되어간다.
아줌마의 남편이 죽고는 벤자민을 찾아가 돌봐 주는데..
결국 갓난쟁이가 되어버린 벤자민이 먼저 세상을 뜨고, 그쯤에서 영화는 막이 내린다.

노인으로 태어나서 점점 어려지다가 죽는다는 판타지적인 소재를 가지고,
실상은 사랑하는 멜로드라마를 한편 보게 되었다. 시종일관 잔잔한 분위기로 이어져
심야영화로 봤었다면 잠에 취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게, 이야기는 이어져갔다.
두시간이 넘어 세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으로 엉덩이가 배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꼼지락 꼼지락 대며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느라 앞좌석을 몇번 걷어찼는데, 미안합니다. 가만있질 못해서
뒤에 앉았던 사람도 작지 않은 머리통이 왔다갔다 해서 신경쓰였을 지도 모르겠는데, 미안합니다. 가만있질 못해서
그래도 키가 작아서 의자에 파묻혀 있었을 테니 신경 별로 안쓰였을테지요. (내 무덤을 파는 발언..)

브래드피트의 최고작이다, 엄청난 열연을 보였다는 기사를 접하긴 했지만 난 잘 모르겠더라.
감동적이라서 울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게 감동을 주는 내용은 없더라. 그저 잔잔할 뿐.
잔잔하고, 멋지고, 아름답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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